한국 기독교 초기 역사에 불을 일으킨 두 권의 성경이 있다. 선교사 존 로스가 번역한 ‘예수셩교젼셔’(1887)와 이수정이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1885)이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에 도착했을 당시 가지고 온 성경도 이수정의 번역본이었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번역 성경이 보급된 특별한 선교의 역사로 기록된다.
이수정은(1842~1886)은 임오군란 때 민비를 구한 공로로 신사유람단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문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진 농업 기술을 배워 나라에 이바지하고 싶었던 그는, 기독교인이었던 농학 박사 쓰다(津田)와의 만남으로 인생의 대전환을 맞았다. 한문성경을 읽던 어느 날 이수정은 꿈속에서 책이 꽉 찬 보따리를 걸머진 두 사람을 만난다. 무슨 책이냐고 묻자 저들은 한국의 모든 책보다 가장 중요한 성경책이라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 이수정은 성경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그는 일본에 건너 간지 7개월 만에 세례를 받고 정식 교인이 되었고, 같은 해 5월 ‘일본기독교도대친목회’에 참석해 조선 선비의 모습으로 최초의 한국어 공중기도를 했다. 이수정은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때마침 일본 주재 미국성서공회 총무로 있던 루미스 목사가 그에게 한국말로 성경을 번역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문 성경에 토를 단 ‘현토한한신약전서(懸吐韓漢新約全書)’을 시작으로 순 한글로 ‘신약성서마가전’ 등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탈고해 인쇄할 수 있었다.
이수정은 일본의 유학생과 교포들을 전도하며 모임을 이끌었고, 미국교회에 지속적으로 한국 선교를 요청했다. 특히 이수정의 편지는 미국의 선교잡지 ‘미셔너리’에 실려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기도 했다. 초기 공식적인 한글성서의 기틀을 마련해 준 그는 혼란한 국내 정치상황 가운데 귀국하여 1886년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당시 나라에서 금했던 기독교의 진리를 생명을 걸고 전한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던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로잡힌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쓰신다. 말씀으로 비롯된 그의 열정은 지금도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한다.
